68.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고 그분께서 저들을 세세에 영원히 세워 놓으시고 법칙을 주시니 아무도 벗어나지 않았기”(시편 148,5-6) 때문입니다. 성경의 율법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위한 다양한 규범을 인간에게 차근차근 제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동족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거든, 그것들을 모르는 체하지 말고 반드시 너희 동족을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 너희가 길을 가다가 나무에서건 땅에서건 어린 새나 알이 있는 둥지를 보았을 때, 어미 새가 어린 새나 알을 품고 있거든, 새끼들과 함께 어미 새까지 잡아서는 안 된다”(신명 22,4.6). 이와 같은 이유로, 이렛날에 쉰다는 것은 인간이 쉰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와 나귀도 쉰다.”(탈출 23,12 참조)는 것도 의미합니다. 분명히 성경에서는 다른 피조물을 고려하지 않는 자의적인 인간 중심주의가 통하지 않습니다.
설명: 현대 신학에서는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성경 말씀이고 둘째는 창조 세계랍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얼마나 공감하시나요? 25년 전인 1998년, 제가 처음 신학교에 발을 내디뎠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1993년 건물 한 동을 지어 개교한 신학교는 1995년 봉헌식을 거행하고 1997년 영성관이 세워졌습니다.
한편 초창기에 심은 나무들이 어느덧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자연 안에서의 쉼이 풍요로운 영성 생활로 이끌어 주는지를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고, “이렛날에 쉰다는 것”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떠올린다면 “자의적인 인간 중심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생태적 감수성으로 바라보면 성경 말씀도 세상도 새롭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