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 편견들
13. 가난한 이들의 여건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믿게 하려고 때때로 ‘분석’되는 자료들 너머를 바라보면, 전반적인 현실은 매우 분명합니다. “일부 경제 법칙은 성장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하였음이 증명되었으나 그렇다고 온전한 인간 발전에 기여하였음이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부는 증대되지만 평등은 없었고,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빈곤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빈곤을 감소시켰다고 하는 주장은 오늘날의 현실에 맞지 않는 과거의 기준으로 빈곤을 측정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다른 시대에서는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빈곤의 표지로도, 큰 불편을 초래하는 원인으로도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역사상 구체적인 시기에 따라 이용 가능한 실제적 기회라는 맥락에서 언제나 빈곤은 분석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 「모든 형제들」, 21항 -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넘어 1984년 유럽 공동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빈곤층’이란, (물질적, 문화적, 사회적) 자원이 너무 제한되어 그들이 살아가는 회원국들 안에서 용인되는 최소한의 생활 방식에서 배제되는 사람, 가정, 집단을 의미할 것이다.” - 유럽 공동체 이사회, 빈곤 퇴치를 위한 특정 공동체 활동에 관한 결정, 제1조, 제2항 - 그런데 모든 인간이 출생지와 관계없이 동일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국가별로 지역별로 엄청난 차이가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도 보아 넘겨서는 안 됩니다.
†⇒ “지구촌 한 가족”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세상입니다. 산업 문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이제 전 세계 어디든지 내가 원하는 곳을 하루 만에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공동의 집인 지구를 다스리고 보살피려는 노력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길이며, 언어와 피부색과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빈곤층을 돌보는 것이 나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82억 명이 넘는데요.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데이비드 스미스 지음, 노경실 옮김, 푸른숲주니어)이라는 책에 따라 비교하면, 전기 에너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20%가 못 됩니다. 부의 편중이 온전한 인간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빈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전 세계 곳곳에서 최소한의 생활 방식을 보장받지 못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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