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복음서는 예수님 삶의 모든 측면에 가난이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그 순간부터 거절당하시는 쓰라린 경험을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요셉과 출산을 앞둔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한 이야기를 전하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예수님께서는 누추한 환경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여지셨습니다. 그다음,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지 않도록 그분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하였습니다(마태 2,13-15 참조).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나자렛 회당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은혜로운 해가 당신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선포하신 다음, 그 마을에서 쫒겨나셨습니다(루카 4,14-30 참조). 그분께서는 버림받은 사람으로 예루살렘 밖으로 끌려 나가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마르 15,22 참조). 사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난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나타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이 겪는 배척을 똑같이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가난한 이들의 특권’(privilegium pauperum)을 분명히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세상에 가난한 메시아로서만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메시아이시자 가난한 이들을 위한 메시아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 “메시아”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단어를 신약 성경에서는 “그리스도”란 히랍어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그리스도’란 말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표현할 때 ‘사람의 아들’이란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방금 읽은 19항에서 언급한 예수님의 생애를 떠올려 보면,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개인의 삶 안에서 어떻게 섭리하고 구현되는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난은 더 이상 죄와 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하느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하느님을 배척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4개의 신비로 드리는 20단의 내용을 떠올리며 일상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온전히 관상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은총을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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