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예수님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몇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께서는 텍톤(téktōn), 곧 장인이나 목수로 일하셨습니다(마르 6,3 참조). 이들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지 못하였기에 농부보다 하층민으로 여겨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하였을 때, 예수님의 부모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습니다(루카 2,22-24 참조). 레위기의 규정에 따르면(12,8 참조), 이는 가난한 이들이 바치는 제물이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일화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을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먹으려고 밀 이삭을 뜯어 모은 이야기입니다(마르 2,23-28 참조). 가난한 이들에게만 밭에서 이삭줍기가 허용되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 루카 9,58).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길 위의 스승이셨고, 그분의 가난과 불안정한 상황은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유대를 보여 주는 표징입니다. 또한 이러한 조건은 그분을 따라서 제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요구됩니다. 이처럼 재물과 부, 세속적 안위를 포기하는 것은 하느님과 그분 섭리에 자신을 맡기는 가시적인 표징이 됩니다.
†⇒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일입니다. 종족의 번식을 위한 동물적 본능이 하느님의 속성인 양심과 자유 의지를 만나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형태로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유목 생활에서 농경 사회로 더 나아가 산업 문명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시스템에 익숙해지면서 노동의 가치가 도구화되었습니다.
한편, 구약 성경은 가난과 병듦을 하느님의 축복을 못 받은 상태, 혹은 저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그들이 공동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보살피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탄생과 죽음을 관통하는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당신의 일생을 통해 선포하고 증명했습니다. 그러기에 가난은 자발적 선택으로 봉헌될 때 주님의 섭리에 의탁하는 표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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