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과 가난한 이들
39. 초 세기부터 교부들은 가난한 이들 안에 하느님께 나아가는 특권적인 길, 곧 그분을 만나는 특별한 길이 있음을 인식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베푸는 애덕은 도덕적 덕목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되신 말씀에 대한 믿음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는 신자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 곁에 있는 데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몸의 단순한 ‘부속 기관’이 아니라 필수 부분으로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순교를 앞두고 스미르나 공동체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애덕 활동을 실천할 의무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권고하며,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하여 틀리게 주장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저들이 얼마나 하느님 뜻을 거스르고 있는지요! 저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곧 과부, 고아, 억압받는 이, 죄수나 자유인, 굶주린 이나 목마른 이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습니다.”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Smyrnaeos), 6, 2, 『그리스도교 원전』(Sources Chrétiennes: SC), 10bis, 파리, 2007, 136-138. -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 주교는 교회의 직무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원로들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심을 가져야 하며, 길 잃은 양들을 회개시켜야 합니다. 모든 병자를 방문하고, 과부나 고아나 가난한 이들을 소홀히 하지 말며, 언제나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좋은 일이 무엇일까’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 성 폴리카르포,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Epistula ad Phlippenses), 6, 1, SC, 10bis, 186. - 이 두 증언에서 우리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환대와 정의의 장소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교부(敎父)’란 말은 초대 교회의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 삼위일체 교리와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을 확립한 분들입니다. 한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 축일은 10월 17일입니다. 사도 성요한의 제자였던 이냐시오 성인은 로마로 압송되는 과정 중에 일곱 개의 편지를 작성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 교부이며 순교자입니다.
또한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 주교 축일은 2월 23일입니다. 성인은 사도 성요한의 제자였고 사도 교부이며 순교자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일곱 편지 중 하나가 폴리카르포 주교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처럼 두 분은 한결같이 순교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에 충실할 때,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수행한다는 본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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