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유스티노 성인도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원로원 그리고 로마 시민들에게 보낸 첫째 호교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로 여겼기에 그들에게 최대한 모든 것을 베풀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주간 첫날 기도하러 모인 회중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그리스도교 전례의 핵심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나눌 수 없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전례 거행의 특정 시점에서 “부유하고 뜻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칩니다. 이렇게 모인 예물은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맡겨지고, 지도자는 고아와 과부,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궁핍한 이, 갇힌 이, 그리고 우리 가운데 머무는 나그네를 돌봅니다. 한마디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를 돌봅니다.” - 성 유스티노, 「제1호교론」(Apologia Prima), 67, 6-7, SC, 507, 파리, 2006, 310. - 이는 초기 교회가 믿음과 사회적 행동을 분리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야고보 성인이 가르쳐 준 것처럼 구체적인 행동으로 증언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으로 여겨졌습니다(2,17 참조).
†⇒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은 6월 1일입니다. 성인은 2세기 초 사마리아 지방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의 그리스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 철학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그리스도교에서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입문하여 신앙의 설교자로 활동했습니다. 에페소에서 「트리폰과 나눈 대화」를 저술하였으며, 로마 황제와 원로들에게 그리스도교를 변호하는 책을 펴내고, 로마에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도 세웠습니다.
성인은 165년 무렵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다른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순교했으며, 야고보 사도처럼 믿음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교했습니다. 이는 10.8 관람했던 뮤지컬 “프란치스코, 맨발의 찬가”에서 전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갈망했던 프란치스코는 고통 속에서도 참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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