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오늘날 가톨릭 병원, 오지의 보건 의료 시설, 밀림 속에서 운영되는 보건소, 마약 중독자 쉼터, 전쟁 지역의 야전 병원 등에서 이 유산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아픈 이들 곁에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구원이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임을 보여 줍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행위로 교회는 하느님 나라가 가장 힘없는 이들 가운데에서 시작된다고 선포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다〕.”(마태 25,36) 하고 말씀하신 분께 언제나 충실한 교회로 남는 것입니다. 나병환자, 영양실조 아동, 죽어 가고 있는 이름 모르는 사람 곁에 무릎 꿇을 때에 교회는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 곧 가장 망가진 모습으로 계시는 주님을 사랑하는 그 소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보편 교회의 역사 안에서만 드러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북경에 가서 세례받고 돌아온 이후에 태동한 조선 교회의 초기 역사는 100년 이상 혹독한 박해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그 박해 때문에 고을을 떠나 첩첩산중으로 피해 들어간 신앙 선조들은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모여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극심한 가뭄에도 신앙 공동체에서는 굶어 죽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고통으로 점철된 삶의 애환 속에서도 웃음과 기쁨이 넘쳐흐르는 신앙 선조들의 삶의 모범은 복음 선포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니까요. 박해의 상황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신앙생활인데도 말이죠. 가난한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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