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동시에 “이 세상의 피조물은 더 이상 단순한 자연의 형태로만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분께서 이 모든 피조물을 신비롭게 간직하시며 그들의 목적인 충만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감탄하셨던 들판의 바로 그 꽃들과 새들은 이제 그분의 빛나는 현존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세상이 모든 것을 완전히 다 채워 주시는 하느님 안에서 펼쳐진다.”라고 한다면, “나뭇잎, 길, 이슬, 가난한 이의 얼굴에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이 무한한 사랑을 노래한다면, 어찌 그 세상을 돌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찬미받으소서」, 100항.
** 「찬미받으소서」, 233항.
†설명. 이번 항은 회칙 「찬미받으소서」 100항과 233항의 내용들을 연결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원천인 주님의 부활 사건이 우리 삶의 근간이 되어야합니다. 이는 모든 신앙인이 부활하신 주님을 대하는 삶의 태도로 이 세상과 자연과 피조물을 바라보라는 초대입니다. 신앙인이 하느님을 만나는 전통적인 방법인 “말씀”과 “창조 세계”를 통해서 관상으로 안내합니다.
이렇게 말씀과 창조 세계를 맛들이면서 하느님을 깊이 만나는 관상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이 세상이 하느님 안에서 펼쳐짐을 느끼게 되고,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하느님 현존의 신비를 체험하고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창조 질서 보전을 위해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이 세상을 돌보는 행위는 더 이상 신앙행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2024.4.19.(금)〉